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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베트남 생활 시행착오 기록</title>
    <link>https://vietnam-life-log.tistory.com/</link>
    <description>vietnam-life-log 님의 블로그 입니다.</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14 Apr 2026 11:43:3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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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흰돛단배B</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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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기서 계속 살아도 될까 혼자 고민이 많았던 하노이의 밤</title>
      <link>https://vietnam-life-log.tistory.com/entry/%EC%97%AC%EA%B8%B0%EC%84%9C-%EA%B3%84%EC%86%8D-%EC%82%B4%EC%95%84%EB%8F%84-%EB%90%A0%EA%B9%8C-%ED%98%BC%EC%9E%90-%EA%B3%A0%EB%AF%BC%EC%9D%B4-%EB%A7%8E%EC%95%98%EB%8D%98-%ED%95%98%EB%85%B8%EC%9D%B4%EC%9D%98-%EB%B0%A4</link>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베란다 난간에 팔을 걸치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로등 불빛 아래로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하노이의 도로는 완전히 잠들지 않은 모양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낮은 엔진 소리가 습한 공기를 타고 묵직하게 전해졌고,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은 안개에 번져 흐릿한 주황색 점들로 보였다. 나는 낮에 마시다 남은 캔커피의 미지근한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켰다. 입안에 남은 텁텁한 단맛이 오늘 하루의 피로와 뒤섞여 묘한 기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득 발아래를 지나가는 오토바이 불빛 하나를 끝까지 쫓아가 봤다. 저 사람은 이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가는 걸까, 내일 아침이면 또 어떤 얼굴로 일터를 향할까 하는 아무런 의미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그냥 문득, 내가 여기서 얼마나 더 살고 있을지 생각이 스쳤다. 3년 전, 국제결혼을 결정하고 하노이에 정착했을 때만 해도 이런 종류의 생각은 내 머릿속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지만, 막상 삶의 터전이 된 하노이는 매일 아침 나에게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생활의 조각들을 던져주고 있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안개 속에 가려진 미래의 실루엣&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익숙해질 법도 한데, 하노이의 무질서함은 가끔 나를 지독하게 무덤덤하게 만든다. 낯선 언어들 사이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보지만, 정작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불안을 털어놓을 곳은 마땅치 않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를 해도 &quot;거기 물가 싸서 좋겠다&quot;는 식의 대답이 돌아오면 그냥 입을 닫게 된다. 그들이 생각하는 낭만적인 베트남과 내가 매일 마주하는 치열한 하노이는 너무나도 간극이 컸다. 아이가 자라고, 교육 문제가 현실로 다가올 때마다 내 생각의 무게는 가로등 불빛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았다. 여기서 계속 살아가는 게 최선일까, 아니면 언젠가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하는 물음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안방에서는 아내가 곤히 잠든 소리가 들려왔다. 저 평온한 숨소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매일 하노이의 매연 속으로 뛰어들고, 서툰 베트남어로 사람들과 부딪힌다. 사랑은 분명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지만, 가끔은 그 힘이 과부하가 걸려 잠시 멈춰 서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오늘처럼 안개가 깊게 낀 밤이면,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방향인지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진다. 경제적인 현실, 문화적인 차이,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느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벽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내 밤을 조금씩 잠식하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나는 베란다 의자에 앉아 담배 대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노이의 밤공기는 여전히 눅눅했고, 피부에 닿는 감촉은 끈적거렸다. 이 끈적임이 마치 내가 처한 현실 같다는 생각을 했다. 털어내려 해도 쉽게 떨어지지 않고, 익숙해지려 해도 매번 낯선 그런 기분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끈적임이 내가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낯설기만 했던 풍경들이 어느새 내 일상이 되었고, 그 일상 안에서 나는 조금씩 무뎌지며 단단해지고 있었으니까.&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불확실함이 주는 기묘한 평온&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시 거실로 들어와 불을 껐다. 어둠이 내려앉은 집안은 낮의 소란함과는 전혀 다른 공기를 품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창밖 가로등 불빛이 벽면에 만드는 그림자를 멍하니 쳐다봤다. 정답이 없는 고민을 붙잡고 있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면서도, 하노이의 밤은 자꾸만 나를 생각의 늪으로 끌어당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고민 끝에도 결국 내가 돌아갈 곳은 아내 옆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내일 아침이면 다시 물가를 걱정하고 서툰 베트남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일부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미래는 여전히 창밖의 안개처럼 뿌옇다. 하지만 그 뿌연 풍경 속에서도 우리는 길을 찾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대단한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빈 캔을 찌그러뜨려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방으로 향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불을 끌어올려 덮으니 아내의 온기가 전해졌다. 밖에서는 여전히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지만, 나는 그 소리를 무시한 채 눈을 감았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하노이가 시작될 것이고, 나는 그 무질서한 흐름 속에 다시 내 몸을 맡길 것이다. 생각들은 잠시 머리맡에 놓아두기로 했다. 지금은 그저 이 고요한 정적 속에서 깊은 잠에 드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인 것 같아 나는 천천히 의식을 놓았다.&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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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3 Apr 2026 06:36:4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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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베트남 살면서 입맛만 바뀐 줄 알았는데 생각이 참 많이 달라졌네요</title>
      <link>https://vietnam-life-log.tistory.com/entry/%EB%B2%A0%ED%8A%B8%EB%82%A8-%EC%82%B4%EB%A9%B4%EC%84%9C-%EC%9E%85%EB%A7%9B%EB%A7%8C-%EB%B0%94%EB%80%90-%EC%A4%84-%EC%95%8C%EC%95%98%EB%8A%94%EB%8D%B0-%EC%83%9D%EA%B0%81%EC%9D%B4-%EC%B0%B8-%EB%A7%8E%EC%9D%B4-%EB%8B%AC%EB%9D%BC%EC%A1%8C%EB%84%A4%EC%9A%94</link>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 나는 전형적인 한국인이었다. 모든 것이 빨라야 했고, 깨끗해야 했으며,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여야 직성이 풀렸다. 식당에 가면 물티슈의 위생 상태를 먼저 체크했고, 길거리의 무질서한 오토바이 행렬을 보며 &quot;이 나라는 대체 왜 이럴까&quot;라는 오만한 질문을 던지곤 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고수를 듬뿍 넣은 쌀국수를 목욕탕 의자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먹고 있다. 단순히 입맛이 적응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 안의 단단했던 가치관이 베트남의 습한 공기에 녹아내려 흐물흐물해진 것이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고수 한 줄기에 담긴 타협의 역사&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고수 특유의 비누 향이 싫어 &quot;No Rau M&amp;ugrave;i(노 라우 무이)&quot;를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 한 줄기가 내 완벽한 식사를 망치는 침입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고수가 빠진 쌀국수는 앙꼬 없는 찐빵 같다. 낯선 것을 배척하던 내 옹졸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체념 섞인 수용이 들어앉았다. 이게 비단 음식뿐일까. 아내와의 문화 차이도, 베트남 사람들의 느긋하다 못해 속 터지는 일 처리도 이제는 그냥 '그럴 수 있지'라며 넘긴다. 나를 지키려 세웠던 그 날 선 기준들이 무뎌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아프고, 또 허탈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끔은 거울 속의 내가 낯설다. 한국에서라면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무질서에 순응하며 허허 웃고 있는 저 남자는 누구인가.&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준이 무너진다는 건, 어쩌면 내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뿌리가 깊어질수록 내가 알던 '나'는 조금씩 지워져 간다. 그게 가끔은 무섭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말 무섭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속도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얻은 것과 잃은 것&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빨리빨리를 외치던 한국의 유전자는 하노이의 교통 체증 속에서 서서히 소멸했다. 오토바이 사이에 끼여 10분을 멍하니 서 있어도 예전처럼 화가 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화를 낸다고 이 행렬이 뚫리지 않는다는 걸, 삶은 내 의지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베트남 도로는 매일 아침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덕분에 마음의 여유는 좀 생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치열하게 성취하려던 독기도 함께 빠져나간 것 같아 씁쓸하다. 나는 여유로워진 걸까, 아니면 그냥 게을러진 걸까.&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타인의 시선보다 중요한 건 오늘의 평온함&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국에서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내 직업과 연봉이 사회적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검열했다. 번듯한 차를 타야 했고, 유행하는 옷을 입어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나에게 그런 걸 묻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 무사히 보냈는지, 저녁 메뉴는 무엇인지가 더 중요한 대화 주제가 된다. 체면이라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 던지니 몸은 가벼워졌는데, 정작 그 안에 남은 알맹이가 너무나 초라해 보여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남의 시선이 사라진 자리에 오롯이 남은 '나'라는 존재를 마주하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는 명품 가방보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맥주 한 박스가 더 큰 행복을 준다. 이런 소소함에 길들여지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가족, 그 거창한 이름의 재해석&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베트남의 끈끈하다 못해 질척거리는 가족 문화를 보며 처음엔 혀를 내둘렀다. 사촌의 사촌까지 챙기는 그 오지랖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런데 혼자 이 먼 땅에서 아프고 외로워보니, 그 질척거림이 사실은 서로를 지탱하는 거대한 그물망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독립적이고 쿨한 관계를 지향하던 나는 어느새 아내의 가족들과 어울리며 그 그물망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의 안위가 우선인 이들의 삶의 방식이, 차갑던 내 가슴을 조금씩 데워놓았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물론 여전히 피곤하다. 끝없는 경조사와 간섭은 적응하기 힘들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넣어준다는 것, 그게 이 낯선 하노이에서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이제는 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변해버린 나를 인정한다는 것&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어제는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친구는 여전히 주식 이야기, 아파트 가격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예전 같으면 나도 맞장구를 치며 열띤 토론을 벌였겠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친구가 말하는 '성공'의 기준과 내가 하노이 길거리에서 느끼는 '행복'의 괴리가 너무나 컸다. 통화를 끊고 나니 내가 정말 다른 세상으로 건너와 버렸다는 실감이 났다. 입맛만 바뀐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렌즈 자체가 교체되어 버린 것이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가고 싶긴 한 걸까.&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창밖에는 여전히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고, 실내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나는 고수 향이 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앉아 있다. 변해버린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예전의 그 꼿꼿했던 내가 그립지도 않다. 그냥 이게 지금의 나라는 걸, 하노이라는 도시가 나를 깎아내어 만든 새로운 형체라는 걸 받아들일 뿐이다. 오늘 밤도 하노이의 공기는 여전히 눅눅하고, 내 생각의 타래는 끝없이 엉켜만 간다.&lt;/p&gt;
&lt;p style=&quot;color: #888; font-size: 12px; margin-top: 2em;&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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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2 Apr 2026 11:16:1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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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제결혼 서류 준비하면서 알게 된 공중 과정 기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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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데 국가가 요구하는 종이 뭉치는 생각보다 훨씬 두껍고 차가웠다. 국제결혼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는 '공증'이라는 끝없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 인내심의 바닥을 몇 번이고 확인해야 했다. 처음엔 그냥 서류 몇 장 떼어서 도장만 찍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하노이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공증 사무소를 찾아 헤매고 번역본의 오타 하나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입안이 까칠해질 만큼 피곤하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번역과 공증, 그 지독한 뫼비우스의 띠&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먼저 마주한 벽은 '번역 공증'이었다. 한국에서 떼어온 혼인관계증명서와 가족관계증명서를 베트남어로 옮기는 과정부터가 고역이었다.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서류가 '진짜'임을 증명받기 위해 외교부의 확인을 받고 다시 베트남 대사관의 도장을 받아야 했다. 서류 한 장을 들고 종로와 대사관을 오가며 느꼈던 건, 내 삶이 이 종이 한 장에 달렸다는 묘한 압박감이었다. 도장이 찍히지 않은 종이는 그저 휴지 조각에 불과했으니까.&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노이 현지 공증 사무소의 풍경은 더 가관이었다. 낡은 실링팬이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좁은 사무실에 사람들은 빼곡했고, 번역가는 내 이름의 영문 철자 하나를 두고 몇 번이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quot;이게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quot; 그 말 한마디가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철자 하나, 띄어쓰기 하나에 내 결혼 일정이 밀릴 수도 있다는 공포감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서류를 대조하고 또 대조했다. 사랑을 증명하는 게 아니라, 오타가 없음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내 차례를 기다리며 멍하니 벽만 봤다. 도대체 이 종이가 뭐라고, 나는 왜 여기서 이렇게 작아져야 하는 건지 서러움이 몰려왔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결국 그날 나는 서류 뭉치를 가슴에 안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도장은 찍혔지만, 내 마음엔 지울 수 없는 피로감이 문신처럼 새겨졌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빨간 도장 하나에 결정되는 나의 정당성&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베트남 법무부 공증을 받기 위해 제출한 서류 뭉치를 담당자가 훑어보는 그 찰나의 정적은 정말 숨이 막혔다. 무심하게 서류를 넘기는 소리, 그리고 마침내 찍히는 '쾅' 소리. 그 빨간 도장 하나가 뭐라고, 도장이 찍히는 순간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내가 이 나라에서 아내와 함께 살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안도감보다는, 이 지긋지긋한 서류 지옥에서 잠시나마 탈출했다는 해방감이 더 컸다. 행정은 내 감정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공증 비용을 지불하면서 영수증을 챙기는데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서류 한 장당 붙는 수수료, 급행료라는 이름의 웃돈... 이 모든 게 국제결혼을 하는 사람이 치러야 할 통과의례라지만, 그 과정이 너무나도 비인격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담당자의 기분에 따라 서류 통과 여부가 달라지는 듯한 뉘앙스를 풍길 때면, 나는 그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사무소를 나오니 하늘은 여전히 뿌옇고 공기는 탁했다. 가방 속엔 무거운 서류 뭉치가 들어있었지만, 내 마음은 오히려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종이 뭉치 속에 갇혀버린 결혼의 의미&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결국 이 모든 과정은 아내와의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었지만, 정작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아내와 대화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quot;그 서류 됐어?&quot;, &quot;도장 받았어?&quot; 우리의 대화는 어느덧 행정 보고서처럼 변해갔다. 사랑의 결실을 맺기 위해 시작한 일이, 정작 사랑을 갉아먹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공증된 서류는 서랍 속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그 서류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쏟았던 에너지와 눈물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누군가 국제결혼 서류 준비가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quot;각오 단단히 하라&quot;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절차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당신의 인내심과 자존감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낭만은 공증 사무소 문턱을 넘는 순간 사라지고, 오직 도장 찍힌 사실만 남는 게 현실이었다. 이제는 서류 봉투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병이 생겼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도 어쩌겠나. 이게 이방인이 사랑을 지키는 방식인걸. 오늘 밤은 공증받느라 고생한 나 자신에게 시원한 맥주 한 캔을 허락해야겠다. 도장 찍힌 서류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아내의 손길이 수만 배는 더 확실한 증명이니까.&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서류 너머의 삶을 준비하며&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공증된 서류는 유효기간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종이들은 다시 효력을 잃고, 나는 또다시 그 복잡한 과정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행정은 끊임없이 나에게 증명을 요구하겠지만, 나는 그 종이들에 내 삶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다. 서류는 그저 통행증일 뿐, 진짜 결혼 생활은 도장이 찍히지 않은 여백에서 만들어지는 거니까.&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노이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서류를 들고 뛰었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 이제는 종이가 아닌 사람에 더 집중하며 살고 싶다. 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공증 사무소의 낡은 의자에 앉아 보냈던 그 지루한 시간들이 내 인내심을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다. 서류 한 장 때문에 일희일비하던 그 시절도 이제는 지나간 추억이 되겠지. 하지만 다시는 그 사무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 여전하다. 진짜 삶은 공증받을 수 없는 법이니까.&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행정의 차가움을 이겨내는 법&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내일은 서류 봉투는 저 멀리 치워두고, 아내와 함께 하노이 거리를 마음 편히 걷고 싶다. 도장도, 번역도 필요 없는 우리만의 언어로 웃으며 말이다. 행정이 주는 스트레스보다 사랑이 주는 위안이 더 크다는 걸 증명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칠 대로 지친 내 마음에도, 빨간 도장 대신 따뜻한 위로 하나가 찍혔으면 좋겠다.&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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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2 Apr 2026 09:13:1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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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랑만으로 버티기엔 베트남 생활은 역시 현실이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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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처음 아내를 만나 베트남행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내 머릿속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quot;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지옥이라도 가겠다&quot;는 유치한 대사가 내 삶의 모토가 될 줄 알았다. 하노이의 매연도, 낯선 언어도 아내의 미소 한 번이면 다 녹아내릴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공항 게이트를 나서는 순간 마주한 하노이의 습한 공기는 내 낭만을 순식간에 현실의 눅눅함으로 바꿔놓았다. 사랑은 분명 위대하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며 마주하는 베트남의 아침은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이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언어라는 장벽 앞에 무너진 로맨티시스트&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장 먼저 나를 괴롭힌 건 침묵이었다. 아내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내 짧은 베트남어와 아내의 서툰 한국어 사이에는 늘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음속엔 수만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데,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건 &quot;밥 먹었어?&quot;, &quot;피곤해?&quot; 같은 단순한 안부뿐이었다. 내 속마음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다는 그 답답함은 생각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다. 사랑하니까 다 이해해줄 거라 믿었지만, 오해가 쌓이고 그 오해를 풀지 못해 등 돌리고 누웠던 밤이면 천장에 돌아가는 실링팬 소리가 그렇게 처량할 수 없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끔은 거실에 앉아 있는 아내를 보며 묘한 소외감을 느낀다. 아내가 처가 식구들과 웃으며 영상 통화를 할 때, 그 빠른 베트남어 속사포 사이에서 나는 그저 웃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는 인형이 된 기분이었다. 사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나는 이 집안에서 가장 고독한 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검색해보곤 한다. 비겁한 생각인 줄 알면서도, 내 언어로 내 마음을 쏟아낼 수 있는 그곳이 미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창밖으로 들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 소리들이 내 방 안까지 침범할 때면, 나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쓴다. 여기가 내 집인데, 왜 나는 여전히 이방인처럼 겉돌고 있는 걸까.&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통장 잔고와 체면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삶&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베트남은 가족 공동체 문화가 정말 강하다. 이게 처음엔 정겨워 보였는데, 직접 그 속에 들어가 보니 이건 정이 아니라 '책임'의 무게였다. 매달 돌아오는 처가댁 경조사는 내 가계부를 사정없이 흔들어놓았다. 사촌의 팔순, 조카의 돌잔치... 끝도 없이 이어지는 모임마다 나는 '한국인 사위'라는 타이틀 때문에 남들보다 더 큰 봉투를 준비해야 했다. 내 주머니 사정은 뻔한데, 아내의 체면을 생각하면 차마 입 밖으로 &quot;이번엔 좀 아끼자&quot;는 말이 안 나오더라. 사랑하니까 지켜주고 싶은 자존심이 내 현실을 갉아먹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번은 아내와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처가댁에 보낼 돈 때문에 내가 예민하게 굴었을 때, 아내의 서운함 가득한 눈빛을 보며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quot;사랑한다면서 고작 돈 때문에 이래?&quot;라고 묻는 것 같은 그 침묵이 내 가슴을 후벼 팠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믿으며 살아왔는데, 하노이 한복판에서 나는 결국 돈 때문에 아내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었다. 사랑만으로 모든 걸 덮기엔 베트남의 현실은 너무나 구체적이고 냉정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내가 해준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머릿속으론 내일 나갈 공과금을 계산하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싫었다. 이게 내가 꿈꾸던 국제결혼의 결말이었나 싶어 숟가락이 무겁게만 느껴졌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낭만이 빠져나간 자리에 남은 흉터들&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는 하노이의 노을을 봐도 예전처럼 설레지 않는다. 저 노을이 지면 또 내일의 치열한 삶이 시작될 거라는 공포가 먼저 앞선다. 아내를 향한 사랑은 여전하지만,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포기해야 했던 한국에서의 편안함과 친구들, 그리고 익숙한 풍경들이 문득문득 가슴을 찌른다. &quot;왜 그렇게까지 사느냐&quot;는 한국 친구들의 무심한 질문에 허허 웃으며 넘기지만, 전화를 끊고 나면 묘한 허탈감이 몰려온다. 나를 지탱해주는 건 오직 아내 하나뿐인데, 그 아내마저 내 힘듦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면 나는 정말 무너져 내린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랑은 마법이 아니었다. 사랑은 오히려 지독한 인내였고, 내 밑바닥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베트남 생활 3년, 나는 이제 로맨티시스트의 가면을 벗고 생계형 이방인이 되었다. 멋진 저녁 식사보다는 마트 할인을 먼저 챙기고, 아내에게 선물할 꽃다발 가격을 보며 몇 번을 망설인다. 이런 내 모습이 가끔은 낯설고 징그럽게 느껴지지만, 이게 하노이에서 사랑을 지키며 살아가는 진짜 모습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끔 밤늦게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베란다 밖을 본다. 수많은 오토바이 불빛이 흐르는 저 거리에 내 자리가 있긴 한 걸까. 사랑 하나 믿고 온 이 땅에서 나는 얼마나 더 단단해져야 할까. 정답은 없다는 걸 알지만, 오늘도 나는 내일의 현실을 견디기 위해 억지로 눈을 감는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아침을 맞는 이유&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침이 오면 아내는 어김없이 따뜻한 쌀국수 한 그릇을 내어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면, 어젯밤의 그 처절했던 독백들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그래, 이 한 그릇의 온기를 지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하노이의 매연 속으로 뛰어드는 거다. 사랑만으로 버티기엔 현실이 너무 무겁지만, 그 무거운 현실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 역시 아내의 따뜻한 손길이라는 이 아이러니. 이 지독한 굴레가 바로 베트남 생활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날 이후로는 아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도 나만큼 힘들 거라는 걸, 낯선 나라에서 온 고집불통 남편을 받아내느라 아내의 마음도 이미 닳고 닳았을 거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서로의 결핍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 대단한 낭만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남은 건 좀 더 질기고 단단한 '전우애' 같은 감정이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통장 잔고는 여전히 슬프고 하노이의 날씨는 변덕스럽지만, 옆에서 곤히 잠든 아내의 숨소리를 들으니 &quot;그래도 살아보자&quot;는 마음이 든다. 사랑만으로 버티기엔 현실이 너무 맵지만, 그 매운맛에 익숙해지는 것도 삶의 일부겠지.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담담하게 현실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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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2 Apr 2026 06:03:1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아내랑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는데 편했던 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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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저녁 식사를 마치고 식탁을 치우는 소리가 멎었다. 하노이의 밤은 늘 그렇듯 창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낮은 저음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웃집의 TV 소음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실 스탠드 하나만 켜둔 채 우리는 소파 양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내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고, 나는 낮에 읽다 만 잡지의 광고 면을 무심하게 넘기고 있었다. 선풍기 헤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저으며 바람을 보냈다. 바람이 닿을 때마다 셔츠 깃이 살랑거렸고, 그 소리가 내 귓가에는 유난히 선명하게 들렸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는 10분 넘게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보통의 부부라면 &quot;오늘 어땠어?&quot;라든가 &quot;내일은 뭐 할까?&quot;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겠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내가 핸드폰 화면을 넘기는 엄지손가락의 규칙적인 움직임, 그리고 내가 잡지장을 넘길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만이 우리 사이의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낯선 타국에서의 삶은 늘 말로 설명해야 하는 것들 투성이였다. 관공서에서, 시장에서, 혹은 아내의 가족들 사이에서 나는 늘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서툰 언어를 쏟아내야 했다. 하지만 이 거실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 그것은 내가 이 사람과 이 공간에 완전히 동화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정적의 무게&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었더니 밖에서 들려오는 습한 밤공기 냄새가 거실로 스며들었다. 하노이 특유의 흙먼지와 매연, 그리고 이름 모를 길거리 음식의 탄내가 섞인 냄새였다. 아내는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더니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아내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스탠드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내의 콧날과 살짝 가라앉은 머리카락 끝을 보며, 우리가 참 멀리까지 와서 함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말로 내뱉는 순간, 이 고요하고 단단한 평화가 흩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얼음 트레이를 비트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아내는 물 한 잔을 들고 돌아와 내 옆에 내려놓았다.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나는 그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잡지로 눈을 돌렸다. 물은 아주 차가웠고 목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찌릿했다. 아내는 다시 제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선풍기 바람이 아내의 발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계 바늘이 10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거실의 공기는 정지해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끔은 대화보다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오늘 우리가 나눈 침묵은 &quot;나 여기 있어&quot; 혹은 &quot;너도 거기 있구나&quot;라는 확인 같은 것이었다. 하노이에서의 고단했던 하루가 이 정적 속에서 서서히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잡지를 덮고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으니 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아내는 이제 핸드폰을 내려놓고 무릎 위에 손을 올린 채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같은 방향을 보고 앉아 있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말하지 않아도 흐르는 것들&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거실 구석에 놓인 작은 화분의 잎사귀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선풍기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밖에서 불어온 미풍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떨림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초록색 잎사귀 끝에 맺힌 작은 먼지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찰나를 목격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 장면이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아내는 작게 하품을 하더니 기지개를 켰다. 옷감이 마찰하며 내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정적을 깼지만, 그것조차 이 공간의 일부처럼 느껴졌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내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어깨를 툭툭 두 번 두드리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게 &quot;이제 자자&quot;는 신호라는 걸 나는 안다. 나는 바로 일어나는 대신 잠시 더 앉아 있었다. 아내가 떠난 소파 자리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스탠드를 끄자 거실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베란다 틈 사이로 들어와 바닥에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 그림자를 밟으며 방으로 향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방 안에서는 아내가 이불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침대맡에 놓인 물컵을 정리하고, 식탁 위에 남은 작은 물방울들을 무심히 쳐다보다가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하노이의 밤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지만, 창문을 닫은 우리 집 거실은 다시 익숙한 고요함으로 채워지고 있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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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2 Apr 2026 03:48:38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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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베트남 물가 싸다더니 내 통장은 왜 이 모양일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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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토요일 오후, 하노이 미딩 근처의 대형 마트 계산대 앞은 늘 활기가 넘친다. 내 앞줄에 선 외국인 가족은 카트에 수입 치즈와 와인을 가득 담았고, 그 뒤의 베트남 젊은 부부는 아이용 기저귀 대용량 팩을 두 개나 챙겼다. 나는 아내와 함께 카트 손잡이를 잡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우리가 담은 건 별거 없었다. 늘 먹는 쌀 5kg 한 포대, 계란 한 판, 아침 대용으로 먹을 우유와 식빵, 그리고 한국산 고추장 작은 것 하나 정도였다. 계산원이 바코드를 찍을 때마다 '삑, 삑'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고, 화면에 표시되는 숫자는 멈출 줄 모르고 올라갔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quot;250만 동입니다(약 13만 원).&quot; 계산원이 무심하게 건넨 영수증을 받아 드는 순간, 손끝에 닿는 종이의 질감이 유난히 서늘했다. 분명 한국에서 장을 볼 때와 비슷한 금액인데, 카트 안은 어딘가 휑해 보였다. 3년 전 하노이에 처음 왔을 때, 길거리에서 3만 동(약 1,600원)짜리 쌀국수를 먹으며 &quot;와, 여기서는 진짜 왕처럼 살겠는데?&quot;라고 호기롭게 외쳤던 내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때의 호기는 마트 계산대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아주 정중하게 박살 났다. 여행자로 머물 때와 생활인으로 뿌리 내릴 때의 물가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편리함과 위생이라는 이름의 세금&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으로 돌아와 마트에서 사 온 물건들을 식탁 위에 늘어놓았다. 영수증을 하나씩 훑어보니 범인은 명확했다. 로컬 시장에 가면 반값도 안 될 채소와 과일들이 '유기농' 혹은 '세척 완료'라는 라벨을 달고 마트 진열대에 오르는 순간 몸값이 두 배로 뛴다. 아이가 먹을 우유는 수입산이라 한국보다 오히려 비싸고, 고추장이나 된장 같은 한국 식재료는 '사치품'에 가까운 가격표를 달고 있다. 로컬 시장의 위생이 걱정되어 마트를 선택한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편리함과 안전을 선택할수록 내 통장은 비례해서 얇아지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내는 정리된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으며 &quot;이번 달엔 식비를 좀 줄여야겠어&quot;라고 작게 웅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미안함과 걱정이 섞여 있었다. 사실 아내의 잘못이 아니다. 하노이의 생활 물가는 이방인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겉으로 보이는 저렴한 인건비와 식사비 뒤에는, 주거비와 전기료, 그리고 예상치 못한 각종 '외국인 프리미엄'이 숨어 있다. 에어컨 없이는 단 한 시간도 버틸 수 없는 하노이의 여름, 매달 날아오는 전기료 고지서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하노이에 사는지 서울 한복판에 사는지 헷갈릴 지경이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후 4시, 거실 창문을 열어두니 눅눅한 바람이 들어온다. 실링팬을 가장 강한 단계로 틀어놓고 소파에 앉아 가계부를 펼쳤다. 지난달 나간 돈을 정리하다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국제결혼 가정을 꾸리다 보니 챙겨야 할 경조사비는 또 왜 이리 많은지. 베트남의 '축의금' 문화는 한국 못지않게 치밀하고 잦다. 사촌의 결혼식, 조카의 돌잔치, 심지어 이웃집의 집들이까지... 거절하기엔 체면이 깎이고, 다 챙기기엔 내 지갑이 비명을 지른다. &quot;물가 싼 베트남에서 돈 많이 모으겠네&quot;라고 묻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 쓴웃음이 났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쌀국수 한 그릇의 가짜 마취&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가계부를 덮고 집 앞 단골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목욕탕 의자 같은 낮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4만 동(약 2천 원)짜리 고기 국수를 주문했다. 뜨거운 국물을 한 입 들이키면 비로소 &quot;그래, 베트남 물가는 역시 싸지&quot;라는 착각에 빠진다. 이 4만 동짜리 쌀국수는 하노이 생활자들에게 일종의 마취제 같은 역할을 한다. 하루 종일 마트 물가와 전기료에 치이다가도, 이 저렴하고 맛있는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quot;그래도 살만하다&quot;는 가짜 위안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수 그릇을 비우고 일어서서 편의점에 들어가 3만 동짜리 수입 음료수 하나를 집어 들면 마취는 금세 풀린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길거리를 지나가는 화려한 자동차들과 우후죽순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들을 본다. 하노이의 발전 속도는 눈부시지만, 그 속도에 발맞춰 올라가는 물가는 무섭다. 누군가는 기회의 땅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땅이다. 로컬의 저렴함에 완전히 녹아들기엔 내 식성이 너무 한국적이고, 그렇다고 한국처럼 살기엔 내 수입이 그만큼 압도적이지 못하다. 그 어중간한 경계선 위에서 내 통장은 매달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하고 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저녁 공기는 여전히 끈적거린다. 아내와 함께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다음 명절(뗏) 때는 고향 친척들에게 줄 선물을 조금 줄여보자고 먼저 제안해왔다.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하노이에 오면 더 여유롭고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돈 문제로 아내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말없이 오토바이 불빛들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장면을 지켜봤다. 저 많은 불빛들 중 내 고민을 덜어줄 빛은 어디쯤 있을까 하는 생각이 그냥 스쳐 지나갔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통장 잔고와 하노이의 밤&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밤 10시, 핸드폰 뱅킹 앱을 켜서 잔고를 확인한다. 입금되는 날보다 출금되는 날이 훨씬 많은 숫자의 나열. 가끔은 이 숫자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하다. 하노이의 밤은 화려하게 빛나고, 맥주 거리의 사람들은 즐겁게 건배를 외치는데 내 마음은 왜 자꾸 쪼그라드는 건지. 국제결혼이라는 선택이 준 행복의 무게만큼, 경제적 책임감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는 걸 매일 밤 뼈저리게 느낀다. 돈 때문에 아내와 예민한 대화를 나누고 난 밤이면, 미안함과 허탈함이 뒤섞여 천장의 실링팬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는 마트 영수증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마음먹어 본다. 그냥 이게 하노이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입장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가끔 한국 대형 마트의 마감 세일 때 집어 들던 1+1 상품들이나, 포인트 적립으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던 소소한 기억들이 그리운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선 그런 작은 재미조차 비싼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니까. 오늘 하루도 열심히 오토바이를 몰고 길 위를 달렸는데, 남은 건 주머니 속의 꼬깃꼬깃한 영수증 몇 장뿐이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내일은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지출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베트남 생활 3년, 물가에 대한 환상은 이미 깨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이면 나는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 여기 있고, 여기가 내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통장 잔고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아내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 하나에 다시 힘을 내본다. 물가는 비싸고 통장은 비었지만, 그래도 하노이의 밤은 깊어만 간다. 내일은 전기료 걱정 없이 바람이 조금이라도 시원하게 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불을 끈다.&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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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1 Apr 2026 15:32: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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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느 순간 하노이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던 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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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후 2시, 하노이의 열기는 정점에 달해 있었다. 거실 창문을 열어두었더니 습하고 뜨거운 공기가 거실 바닥 타일에 눅눅하게 달라붙는 게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곧장 에어컨을 켜고 창문을 닫았겠지만, 오늘은 그냥 그 끈적임을 내버려 두었다. 선풍기 날개가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하얀 회벽 모서리에 아주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멈춰 서 있었다. 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흔들며 먹잇감을 노리는 그 모습이 이제는 징그럽지도, 신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오늘도 제 자리에 있구나' 하는 정도의 무덤덤한 확인뿐이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병 표면에 금세 물방울이 맺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수건을 가져와 닦는 대신 손가락으로 그 물방울을 훑어 내렸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각이 금세 미지근해졌다. 밖에서는 공사장의 망치 소리와 오토바이의 엔진음이 뒤섞여 들려왔다. 하노이 어딜 가나 들리는 이 소음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배경음악처럼 고요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뇌가 이 소음들을 일상의 일부로 분류해버린 모양이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딱히 잠이 오는 것도 아닌데 눈을 감고 있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익숙한 소음과 무심한 시선&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슬리퍼를 끌고 집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이웃집 베트남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장바구니를 든 채 나에게 가벼운 목례를 건넸고, 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그저 같은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나누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1층 로비로 나오니 경비원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의 옆에 놓인 작은 라디오에서는 베트남 전통 가요가 흘러나왔다. 꺾임이 심한 그 멜로디가 예전에는 소음처럼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리듬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길을 건너는 것도 이제는 일이 아니었다. 쏟아져 들어오는 오토바이 행렬 사이로 눈을 맞추며 일정한 속도로 걷기만 하면 된다는 걸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멈추거나 뛰지 않고, 그저 흐름의 일부가 되어 반대편 보도로 건너갔다. 편의점 안은 에어컨 바람 덕분에 서늘했다. 나는 진열대에서 익숙한 브랜드의 캔커피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 직원은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다가 내가 캔을 내려놓자 그제야 바코드를 찍었다. 거스름돈으로 받은 낡은 지폐 한 장을 지갑에 대충 찔러 넣고 밖으로 나왔다. 캔커피의 알루미늄 감촉이 손바닥을 기분 좋게 자극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점상 아주머니가 파는 잘라 놓은 망고를 봤다. 노란색이 아주 선명해서 잠시 멈춰 섰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살 거냐고 묻지 않았고, 나도 가격을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서로 한 번 쳐다보고 지나쳤다. 하노이의 길거리는 이런 무심함이 가득해서 좋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고, 나도 누구에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 자유가 나를 이 도시의 일부로 섞이게 했다. 골목길 담벼락에 늘어진 전선들 사이로 비치는 오후의 햇살이 타일 바닥 위에 불규칙한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그 무늬를 밟지 않으려고 보폭을 조절하며 걸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오후 4시의 공백&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시 집에 돌아와 캔커피를 땄다. 치익, 하는 소리가 주방에 짧게 울렸다. 커피는 생각보다 달았고 끝맛이 텁텁했다. 주방 창문을 통해 내려다본 도로는 여전히 분주했다. 학교 수업이 끝났는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떼를 지어 지나갔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공기 중에 흩어졌다. 나는 커피를 마시며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특별히 예전 생각이 난 것도, 아이들이 부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었다. 시계 바늘이 4시를 지나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빨래 바구니를 뒤져 수건 몇 장을 세탁기에 넣었다. 물이 차오르는 소리와 세탁기 통이 돌아가는 기계음이 베란다를 채웠다. 나는 세탁기 위에 손을 올리고 그 진동을 가만히 느껴봤다. 일정한 리듬으로 떨리는 기계의 움직임이 내 손바닥을 타고 팔꿈치까지 전달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이런 사소한 감각들이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다. 세탁기가 멈추면 빨래를 널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 거실 소파로 돌아왔다. 아까 보았던 도마뱀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벽면에는 도마뱀이 머물렀던 자리만 하얗게 남아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핸드폰을 켜서 날씨 정보를 확인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습도가 더 높을 예정이라고 했다. 큰 의미는 없었다. 하노이에서 습도가 높다는 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니까. 나는 핸드폰을 던져두고 다시 눈을 감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빵빵거리는 소리가 아주 멀게 느껴졌다가 다시 가깝게 들리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내가 한국에 있는지 하노이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로 이 낯선 도시의 소리들이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이제는 이 무질서함이 오히려 질서 정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나 또한 그 자리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무의미한 관찰의 끝&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탁기가 다 돌아갔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나는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젖은 수건을 하나씩 털어 건조대에 널었다. 탁, 탁 하고 수건이 펴지는 소리가 좁은 베란다 벽을 타고 울렸다. 젖은 천에서 나는 특유의 세제 냄새와 하노이의 매연 냄새가 섞여 묘한 향기를 만들어냈다. 마지막 수건을 널고 나니 손끝이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나는 손을 털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거실의 조도를 조금 낮추고 스탠드를 켰다. 노란 불빛 아래로 먼지들이 춤을 추듯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 먼지들의 움직임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들은 아무런 방향도, 목적도 없이 그저 공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내는 오늘도 조금 늦을 모양이다. 저녁을 무엇을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냉동실에 있던 만두를 꺼내 놓았다. 만두 피 표면에 서린 서리가 상온의 공기를 만나 금세 투명하게 변해갔다. 나는 만두가 녹기를 기다리며 식탁 의자에 앉아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손톱 끝이 조금 거칠어진 것 같아 손톱깎이를 가져와 다듬었다. 깎여나간 손톱 조각들이 검은색 식탁 위로 흩어졌다. 나는 그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 휴지에 싸서 버렸다.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하는 행동들이었지만, 그 과정들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무의미한 일련의 행위들이 나를 오늘 하루라는 시간에 묶어두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주황색 조명들이 밤하늘의 안개와 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지만, 나는 그냥 창문을 닫았다. 실내로 들어오는 소음을 차단하고 싶어서였다. 창문을 닫자 실내엔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아 아까 마시다 남은 캔커피를 들이켰다. 커피는 이제 완전히 미지근해져서 단맛만 강하게 느껴졌다. 캔을 찌그러뜨려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깡통이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금속음이 날카롭게 들렸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늘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아무 일 없던 시간 덕분에 하노이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나는 만두를 찌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리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다. 치익 소리와 함께 파란 불꽃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아내가 오기 전에 식탁을 닦아야겠다고 생각했다.&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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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1 Apr 2026 13:31:58 +0900</pubDate>
    </item>
    <item>
      <title>하노이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멘탈 나간 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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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노이에서 오토바이를 탄다는 건 매일 아침 목숨을 건 도박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무서웠고, 좀 지나니 익숙해졌고, 나중엔 내가 베트남 사람이라도 된 양 요리조리 칼치기를 하며 달렸다. &quot;나는 사고 안 나겠지&quot;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그날 오후, 하노이의 도로는 보란 듯이 내 오만한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렸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손바닥에 땀이 흥건해진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찰나의 순간, 그리고 멈춰버린 세상&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쾅. 소리보다 먼저 느껴진 건 몸이 공중에 붕 뜨는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시야는 하늘과 땅을 번갈아 비췄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스팔트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주변을 가득 채우던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멀게만 느껴지고, 내 거친 숨소리만 귓가에 크게 울렸다. &quot;아, 나 사고 났구나.&quot; 머릿속엔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 일어날 엄두도 안 났고, 그냥 이대로 눈을 감고 싶다는 도망치고 싶은 기분만 가득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무릎이 따끔거리고 팔꿈치가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나를 둘러싼 현지인들의 시선이었다.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내 주변을 스쳐 지나가며 나를 구경거리 보듯 쳐다봤다. 누군가 도와줄 법도 한데, 그 냉정한 흐름 속에서 나는 철저하게 이방인이었고 이물질이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았다. 그때 느꼈던 그 고립감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쓰러진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는데 왜 그렇게 무겁던지. 평소엔 가뿐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나를 억누르는 쇳덩이처럼 느껴졌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마주한 서러움&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고 상대방인 아저씨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베트남어를 못하는 나로선 그게 욕인지, 따지는 건지, 아니면 괜찮냐는 걱정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냥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잘못한 게 맞는지조차 판단이 안 서는 상황에서, 그 아저씨의 험악한 표정과 삿대질은 내 멘탈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숨이 안 쉬어지는데, 눈앞은 핑핑 돌고... 진짜 울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나를 가리켰다. 그들의 말속에 내 비난이 섞여 있을 것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대충 상황이 정리되고 상대방이 떠났을 때, 나는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이 덜덜 떨려서 시동조차 걸 수 없었다. 하노이의 뜨거운 열기는 여전했는데, 내 몸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가는 기분이었다. 이게 대체 왜 나한테 일어난 일인지 이해가 안 갔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집으로 오는 길이 지옥 같았던 30분&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옆을 지나가는 작은 오토바이 소리에도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았고, 교차로에서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아까 그 사고 장면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미칠 것 같았다. 30분 남짓한 귀가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치던 골목길 하나하나가 나를 잡아먹으려는 괴물처럼 보였다. 그냥 오토바이를 버리고 택시를 탈 걸 그랬나 싶더라.&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시동을 끄고 정적이 흐르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픈 건 둘째치고, 그냥 너무 무섭고 외로웠다. 이 낯선 도시에서 사고 하나에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서글펐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먼지투성이에 얼굴은 핼쑥해져서 정말 봐줄 수가 없었다. 오늘 하루가 도대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비린내&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에 들어오자마자 옷도 안 벗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천장의 실링팬이 돌아가는 소리만 공허하게 들렸다.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으니 무릎과 팔꿈치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고 살점이 패여 있더라. 따가운 물이 상처에 닿을 때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마음속의 상처는 그보다 훨씬 깊었다. 씻고 나와서도 몸 어딘가에서 아스팔트 냄새와 매연 비린내가 계속 나는 것 같아 몇 번을 더 씻었는지 모른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침대에 누웠는데 눈을 감으면 자꾸 사고 순간이 반복 재생됐다. 쾅 하는 소리, 몸이 뜨는 느낌, 바닥에 부딪힐 때의 충격... 그날 이후로는 길가에 서 있는 오토바이만 봐도 괜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큰 사고가 아니었음에 감사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하노이 도로에 대한 정이 뚝 떨어져 버렸다. 이제는 오토바이 시동 거는 것조차 미리 겁부터 난다. 그냥 한동안은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창밖으로 들리는 오토바이 경적 소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날카로운지. 밤은 깊었는데 잠은 안 오고, 그날의 기억만 머릿속을 맴돈다. 하노이 생활이 익숙해졌다고 자만했던 대가가 너무나도 가혹하다. 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진짜 지독하게 길었다.&lt;/p&gt;
&lt;div style=&quot;background-color: #f1f3f5; padding: 20px; border-radius: 10px; margin-bottom: 2em;&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토바이 사고 한 번에 하노이라는 도시가 이렇게 무서워질 줄은 몰랐네요. 몸 상처는 금방 아물겠지만, 그때 느꼈던 그 막막함과 공포는 오래갈 것 같습니다. 당분간은 그냥 오토바이 키 서랍 깊숙이 넣어두고 잊어보려고요.&lt;/p&gt;
&lt;/div&gt;
&lt;p style=&quot;color: #888; font-size: 12px; margin-top: 2em;&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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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1 Apr 2026 11:37:57 +0900</pubDate>
    </item>
    <item>
      <title>하노이에서 서류 하나에 붙잡혀 하루를 다 보내고 돌아오던 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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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침 8시. 창밖으로 쏟아지는 하노이 햇살이 유난히 따갑더라니. 어제 미리 챙겨둔 서류 뭉치를 가방에 쑤셔 넣고 오토바이에 올라탈 때만 해도 내 계획은 완벽했다. 점심 전까지 깔끔하게 공증받고, 오후엔 시원한 카페에서 아아나 한 잔 때리며 밀린 일 좀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하노이는 늘 내 계획을 비웃듯 예상치 못한 변수를 던지곤 한다. 오늘은 그 변수가 내 하루 전체를 집어삼킨 날이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5분의 차이가 불러온 거대한 나비효과&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토바이를 타고 공증 사무소로 향하는 길은 거대한 매연 세탁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와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입안에서 먼지가 서걱거렸다. 그래도 &quot;이것만 끝내면 된다&quot;는 생각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했는데, 사무소 입구에 붙은 '점심시간 11시부터'라는 문구를 본 순간 첫 번째 멘붕이 왔다. 시계를 보니 10시 55분. 딱 5분 차이로 내 오전이 통째로 증발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베트남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은 칼보다 정확하다. 셔터가 내려가는 걸 멍하니 보는데 진짜 허탈하더라. 근처 식당에 앉아 분짜 한 그릇을 시켰다. 선풍기도 안 돌아가는 좁은 식당에서 땀을 닦으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싶었다. 고기는 타서 딱딱하고 느억맘 소스는 미지근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사무소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낯선 골목길을 정처 없이 서성거렸다. 길가에 앉아 담배 피우는 현지인들이 왜 그렇게 부럽던지.&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냥 집에 갈까? 아니,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오나 싶어 억지로 버텼다. 땡볕 아래서 한 시간 반을 버티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어제는 되고 오늘은 안 되는 마법의 행정&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후 1시 반, 드디어 문이 열렸다. 내 차례가 되어 서류를 내밀었는데 담당 직원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quot;이 서류, 사본이네요. 원본 가져오세요.&quot; 청천벽력 같았다. 분명 어제 전화로 확인했을 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더니, 오늘 담당자는 말이 달랐다. 말이 안 통하니 파파고까지 돌려가며 &quot;어제는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quot;고 따져봤지만 돌아오는 건 무심한 눈빛뿐이었다. 하노이 살면서 제일 힘든 게 바로 이거다. 담당자 기분에 따라 룰이 바뀌는 알 수 없는 시스템.&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시 집으로 돌아가 원본을 챙겨 오는데 왕복 두 시간이 걸렸다. 퇴근 시간과 맞물린 도로는 그야말로 주차장이었다. 오토바이 틈바구니에 끼어 매연을 마시며 &quot;제발 문 닫기 전에만 도착하자&quot;고 빌고 또 빌었다. 엉덩이는 저리고 손목은 감각이 없었다. 간신히 다시 도착했을 때 내 몰골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참 처량하더라. 고작 종이 한 장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은 자괴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도장 하나에 녹아버린 나의 8시간&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여곡절 끝에 원본을 내밀고 붉은 도장이 쾅 찍히는 걸 본 시간이 오후 4시 반이었다. 아침 8시에 집을 나섰으니 고작 이 서류 한 장에 내 8시간이 다 녹아버린 셈이다. 도장이 찍힌 서류를 가방에 넣는데 기쁘기보다는 맥이 탁 풀렸다. 사무소를 나오니 하늘은 어느새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퇴근하는 사람들의 경적 소리는 아침보다 더 날카롭게 귀를 찔렀다. 오늘 하루 내가 한 일이라곤 도로 위에서 시간을 버리고 땀 흘린 것밖에 없었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목욕탕 의자에 앉아 마시는 짜다 한 잔의 위로&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 어귀에서 오토바이를 세웠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길가 목욕탕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짜다(얼음차) 한 잔을 시켰다. 500원도 안 하는 그 시원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데 비로소 정신이 좀 들더라. 주변에는 퇴근하고 모여앉아 맥주 한 잔에 웃고 떠드는 현지인들이 보였다. 그들에겐 평범한 하루였겠지만, 나에게는 정말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져 헛웃음이 났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소리, 상인들이 외치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음악 소리... 평소엔 소음이었던 것들이 이상하게 위로처럼 들렸다. 그래, 이게 하노이지. 내가 선택한 곳인데 누굴 탓하겠나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진 차를 마저 마시고 일어났다. 바지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다시 오토바이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lt;/p&gt;
&lt;h2 style=&quot;margin-bottom: 1em;&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텅 빈 거실에서 마주한 허탈한 결과물&lt;/h2&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에 들어오자마자 샤워기 밑에 섰다. 뜨거운 물이 닿으니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그 공증 서류를 멍하니 쳐다봤다. 이게 뭐라고 내 하루를 다 가져갔을까. 하노이 생활은 가끔 이렇다. 아주 사소한 거 하나 얻으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진이 다 빠져버린다. 한국이었으면 진작 끝났을 일이 여기선 하루 종일 걸리는 마법 같은 일이 매일같이 일어난다.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이런 날은 마음 한구석이 텅 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내일은 또 어떤 변수가 나를 기다릴까. 이제는 &quot;그러려니&quot; 해야 하는데 여전히 허탈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고생한 나한테 맥주 한 캔은 사줘야겠다 싶어 다시 슬리퍼를 끌고 나갔다. 밤공기는 낮보다 조금 시원해졌고, 어두워진 거리는 낮의 치열했던 흔적을 지운 채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참 길었다. 진짜 길었다.&lt;/p&gt;
&lt;p style=&quot;color: #888; font-size: 12px; margin-top: 2em;&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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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1 Apr 2026 09:26:3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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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노이에서 집 구하다 땀쭈 때문에 멘붕 온 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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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노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진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쳤다. 한국에서 이사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대충 복덕방 가서 계약서 쓰고 살면 그만인 줄 알았다. 근데 베트남은 시작부터가 완전 딴판이었다. 노이바이 공항에 내려서 후끈한 공기를 마실 때만 해도 내가 여기서 '유령 인간' 취급을 받으며 한 달을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특히 이름도 생소한 '땀쭈'라는 녀석이 내 정착 초기 꿈을 아주 처참하게 박살 낼 줄이야.&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처음 만난 집주인 아저씨는 인상이 참 좋았다. 금테 안경을 쓰고 서툰 영어로 &quot;땀쭈는 내가 온라인으로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짐이나 풀라&quot;며 환하게 웃는데, 그 미소에 홀딱 속아 아무 의심 없이 내 소중한 여권을 넘겨줬다. 그땐 그게 베트남식 서비스인 줄 알고 &quot;땡큐&quot;를 연발하며 좋아했는데, 그게 내 고생의 서막이었다. 입주하고 일주일, 이주일이 지나도 그 흔한 신고 완료 문자나 서류 한 장이 없길래 슬슬 불안해졌지만, &quot;곧 되겠지&quot; 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생활비 때문에 현지 은행 계좌를 만들러 갔을 때 결국 사건이 터졌다. 은행 직원이 내 여권을 한참 조회하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quot;시스템에 당신 이름이 전혀 없다&quot;고 하더라. 나는 분명 이 도시에 살고 있고 집세도 냈는데, 국가 시스템은 나를 부정하고 있었다.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고, 등 뒤로 식은땀이 쭉 흐르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불법 체류자가 된 건가 싶은 공포가 확 밀려왔다. 직원의 사무적인 말투가 그날따라 왜 그렇게 차갑게 들리던지 모르겠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은행 문을 나서는데 하노이의 그 덥고 습한 공기가 숨이 턱 막히게 느껴졌다. 지나가는 수천 대의 오토바이 소리는 왜 그렇게 비웃는 것처럼 시끄러운지, 나만 이 거대한 도시에서 붕 떠 있는 것 같아 한참을 길가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집주인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quot;시스템이 점검 중이다&quot;, &quot;담당 공안이 시골 집으로 휴가를 갔다&quot;는 뻔한 변명만 늘어놓길래 진짜 열이 끝까지 뻗쳤다. 말로만 듣던 베트남식 '까오무(변명)'를 내가 직접 당하고 있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집 앞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쓰디쓴 카페 쓰어다를 연거푸 세 잔이나 들이켰다.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데, 집주인은 전화를 아예 안 받기 시작했다. 사람이 진짜 궁지에 몰리니까 눈에 뵈는 게 없더라. 가방을 챙겨 들고 무작정 동네 공안국(현지 경찰서)을 찾아갔다. 낡은 노란색 건물의 퀴퀴한 종이 냄새와 천장에서 덜컹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소리를 들으며 대기석에 앉아 있는데 진짜 자괴감이 몰려왔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제복 입은 공안이 나를 무심하게 쳐다보며 &quot;당신 주소지로 신고된 내역이 전혀 없다&quot;고 딱 잘라 말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집주인이 거짓말을 한 게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길로 집주인에게 &quot;지금 당장 공안국으로 안 오면 나 이 집에서 그냥 짐 싼다. 그리고 대사관에 신고하겠다&quot;고 강하게 메시지를 날렸다. 착한 외국인 코스프레는 그날로 때려치우기로 했다. 평소엔 느긋하던 사람도 돈줄이 끊기거나 문제가 커질 것 같으니 그제야 허겁지겁 나타나더라.&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음 날 오후,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노란색 종이 한 장을 받았다. 조잡한 인쇄물에 붉은 도장이 쾅 찍힌 '땀쭈 증명서'. 그 종이 쪼가리 하나가 뭐라고 손이 다 떨릴 정도로 안심이 됐다. 이 종이가 없으면 나는 여기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는 사실이 서글프면서도 다행이었다. 다시 은행으로 달려가 통장을 만들고 체크카드를 손에 쥐던 그 순간의 쾌감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이제야 여기서 쫓겨날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진짜 거주자'가 된 기분이었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며칠 뒤에 집주인이 미안했는지 망고를 한 바구니 사 들고 와서 &quot;쏘리, 쏘리&quot; 하며 특유의 넉살 좋은 웃음을 지었다. 사람 피를 말려놓고는 망고 몇 알에 퉁치려는 그 모습을 보니 화가 나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quot;이게 베트남이구나&quot; 싶었다. 그날 이후로는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들더라. 그 뒤로는 뭐 하나 안 되면 그냥 바로바로 들이밀고 따지는 습관이 생겼다.&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 margin-top: 30px; margin-bottom: 2em !importan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벌써 꽤 시간이 지났지만, 가끔 서랍 정리하다 그 낡은 노란 종이를 발견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때는 진짜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노이 정착기 중에 가장 스펙터클하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다. 그 치열했던 한 달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 도시의 불협화음을 즐기며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덕분에 하노이의 이 정신없는 소음과 느긋함이 이제는 제법 정겹게 느껴진다. 오늘도 창밖 오토바이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집주인이 준 것보다 훨씬 달콤한 망고나 하나 까먹어야겠다.&lt;/p&gt;</description>
      <category>베트남 생활 기록</category>
      <author>흰돛단배B</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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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Apr 2026 22:13:39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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